어쩌다 프로 발표자가 된 24년 1분기 후토크
학생 때도 이렇게까지 일 벌렸던 적은 없는 것 같아 남겨보는 후기
도파민이 넘치는 1분기였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특히 작년에는 업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대외 활동은 생각도 해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부터 주변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었다. 솔직히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만 주요 이벤트들을 다 해결하고 나니 (내 입으로 얘기하기는 민망하지만) 나 자신도 내가 어떻게 했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개별 활동들의 의미가 개인적으로 컸기 때문에 후토크1를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
왜 이렇게 뜸했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작은 개발자 커뮤니티의 운영진으로 1년 간 활동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가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했던 재미가 그리워 뜻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새로운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행사도 분기에 1번씩 열었다.
문제는 작년 초에 업무가 바뀌며 업무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 바뀐 환경은 개인적으로 많이 벅찼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 주변 정리가 필요했다. 커뮤니티 활동을 그만두게 된 것도 그 주변 정리 과정에서 하게 된 것이다. 주변 정리 이후 작년 말까지도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눈을 회사 밖으로 돌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다시 생겼다.2
모든 일의 시작 - K-DEVCON 서울 챕터
그 과정에서 1월 초에 아는 분에게 받은 연락이었다. 힘든 와중에 작년에 간간히 모 교육 업체에서 간간히 짧은 특강을 하며 알게 된 분인데 새로운 개발자 커뮤니티인 K-DEVCON3의 운영진을 하시게 되었다고 하며, “개발자 커뮤니티 운영진"으로서의 경험을 발표해달라고 요청을 하신 것이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개발자 커뮤니티 활동은 그만둔지 오래 됐기에 일반적인 주니어 개발자의 신분으로 발표해야 될 것을 설명드린 결과 커리어 관련 발표를 해보는 것으로 협의를 했다. 그리하여 K-DEVCON 서울 챕터의 첫 행사인 “데브콘 서울 : 일월엔 신장개업”의 첫 순서로 발표하게 되었다.
문제는 말이 “커리어” 관련 이야기지만, 실무 경력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할 거리는 많지 않았다.4 그러기 때문에 어떤 내용으로 발표를 구성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했는데, 이게 내가 밟아온 과정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집에 센 편이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들는 와중에 굴곡은 많이 있어서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었던 귀중한 교훈들이 있었고 이들을 실천하며 결과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개발자”5가 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어 이걸 공유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자칫 잘못하면 뻔한 이야기들로 들리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강연들이 끝나고 진행된 패널 토크에서도 각종 질의응답에 답변을 하며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내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나온 커뮤니티 나들이를 발표자 신분으로 하니 도파민이 엄청 분출되었음을 느꼈다.
본격 기술 강연 데뷔 - 한빛N MSA
여기서 끝났으면 이 글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K-DEVCON 발표가 끝난 직후 한빛N 관계자분이 오셔서 곧바로 강연 제의를 해주셨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관계자분도 원래는 강연 섭외 목적없이 개인적 관심으로 참여하셨다고 한다. 아이템은 역시 주니어 개발자들을 위한 강연이었고, 이번에는 “기술 강연"이었다. 이름하여 한빛N Mini-seminar Assemble, 줄여서 MSA 시리즈였다.
마침 작년에 타 교육업체에서 진행했던 아이템과 일부 겹치는 주제가 있어 수락했다. 그러나 킥오프 미팅을 하며 담당자님들과 이야기를 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 충격을 받게 되었고, 이후 발표 내용 구성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학부 생활 중 다닐 때 일부 선배들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런 건 하룻밤이면 다 만들었어”, “나 때는 이런 내용 선배들이랑 커피 마시면서 배웠어” 등. 표면적으로 들으면 일명 ‘라떼 이야기’라서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만, 그 표현을 뜯어보면 지식의 전파가 미시적으로 잘 일어나는 동시에 배움에 대한 열정이 공유되는 때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학교에서 보였던 끈끈한 선후배 간의 교류는 서서히 줄어들고, 최근 몇 년 동안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완벽한 단절이 생기며 실전 지식의 전파 또한 정체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현업이 요구하는 수준과 실제 예비 개발자들의 역량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 차이는 의외로 어려운 내용이 아닌 기초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킥오프 미팅하며 깨닫게 되었다. 한빛N MSA는 과거 선후배 간의 가벼운 티타임으로 이야기할 만한 내용들을 정돈하여 세미나로 만들어내며 그 간극을 줄여보기 위해 만들어진 시리즈였다.
나 또한 이번 강연의 내용의 80%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깨달았던 내용들이었으며, 이런 내용들을 누군가 알려줬으면 ‘‘시행착오들을 덜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참석하셨던 분들 중 일부는 예상했던 수준보다 낮아서 좀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사수없이 혼자 일하는 스타트업 개발자분들, 이제 막 웹 프로그래밍 기초를 뗀 예비 개발자분들에게는 도움이 됐으면 하여 웹 서비스 배포 및 인프라 아키텍처 설계의 (내가 아는) A-Z를 모두 공유해봤다. 세미나가 끝나고 몇몇 분들이 개별적으로 질문을 해주신 것도 있었고, 긍정적인 피드백들이 들어와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10년 만에 참가자에서 발표자로 - HelloWorld 24
앞서 이야기했던 킥오프 미팅을 하고 나서 충격을 적젆이 받았기에 느낀 점들을 SNS에 올렸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누가 그러더니만) 글의 핵심은 업계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업계 선후배 간의 교류의 장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고, 거기엔 선배들이 발표자로 나서며 분야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해당 글을 보셨던 개발자 커뮤니티 활동 당시 알고 지내던 분이 연락을 해오셨다. SNS에 올렸던 글을 주제로 “HelloWorld 24” 행사에서 발표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고 이 또한 수락했다. 그러나 이번에 수락한 것은 다른 발표들과는 상황이 좀 달랐다.
HelloWorld 행사는 GDG Incheon 커뮤니티에서 약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진행되어오는 행사였고, 내가 개발자 커뮤니티에 입문하게 된 행사였다. 학부 시절 배우던 전공 기초 과목들의 필요성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아6 “진짜 개발” 공부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찾고 있던 상황에서 알게 되었다. 당시 학교 동아리 부회장의 직권을 이용해 후배들을 모아 단체 참석7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찾아보니 그 행사에 참여한 것이 2014년 3월 8일이었고, 이번 행사가 2024년 3월 30일이었으니 거의 10년 만에 첫 개발자 커뮤니티 행사의 발표자로 나서게 된 것이다.
단체 참석했던 사람 중에서 나만 GDG Incheon 커뮤니티에 남게 되었고, 개발자 커뮤니티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줬고 여러 기술들을 접하며 업계를 바라보는 눈을 넓혀주었다. 이전에도 각종 발표와 강연들을 했지만, 마치 고향에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아 다른 때보다 감회가 새로웠다.
내용 자체는 K-DEVCON에서 했던 내용의 확장판이고 겹치는 내용들이 좀 있어 지루할 수 있었지만 잘 마무리했다. 정해진 끝나는 시간이 훌쩍 넘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자리에 남아 질의응답을 들어주시고, 끝난 이후에 많은 분들이 커리어 상담을 위해 개인적으로 질문하러 연단에 올라와 주셨다. 이런 반응들을 보니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며 1분기를 마치게 되었다.
마무리
한창 개발자 커뮤니티로 활동하던 학부생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각종 일정들을 몰아쳐서 소화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더욱이나 커뮤니티에서 “발표자"의 신분으로 활동을 이렇게 시작할 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발표를 좋게 들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분기 동안 몰아쳤던 만큼 당분간 대외적으로 발표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HelloWorld 24 행사 말미에 이야기했듯이 나 또한 지금 가지고 있는 나름의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잠수를 타지는 않고 물 밑에서 업계 후배들과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고, 이를 준비 중이다.
작년 말에 감명 깊게 읽었던 김성근 감독님의 에세이 구문을 인용하며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채용 시장이 얼어있는 상황에서 힘이 되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각자 자기가 가진 재능을 찾아 그걸 자기 나름대로 꽃피워야 한다. 자기가 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중략)
한 번에 성공하는 게 아니라 무수히 실패하고, 도전하고, 길을 찾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공해 나가는 게 인생이듯이, 야구도 숱하게 실패하고 좌절해도 다음 경기를 위해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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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달수네 라이브’에서 접한 단어. 쉽게 말해 후기인데, 후기라고 하면 어감이 본격적인 것 같아 대신 사용하는 문구로 예상되는데, 나 또한 가볍게 소회를 공유하기 위해 이 단어로 선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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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 회복을 해서 이제는 10km 마라톤은 여유있게 뛰고 오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작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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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대전에서만 운영되고 있었으나, 올해부터 서울 챕터가 개설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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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도 기술 관련 내용들을 얘기하라고 하면 더더욱이나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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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나 자신을 표현하는 문구이다. (발표에서도 나름 밀고 있는 키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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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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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수원이었고 행사는 인천이었는데, 이 행사를 반강제 동원시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던 것 같아 후배들에겐 좀 미안하다. ↩︎